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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그 공간을 찾아서] 밀양 미리벌민속박물관 - 2007년 11월30일 경남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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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 2007. 11. 30(金)

조상 숨결 숨쉬는 민속유물 ‘보물창고’

성재정 관장 , 초동면 옛 범평초교에 1998년 개관

성재정 미리벌민속박물관장이 민속품 전시실에서 '12모 개다리 소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개다리 소반은 조선시대 신분이 낮은 손님에게 내던 밥상으로 소설 춘향전에 보면 '월매가 한양에서 남루한 옷차림으로 돌아온 이몽룡에게 개다리 소반에 밥을 차려주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시간 속으로의 여행’은 언제나 가슴 설레는 일이다.

밀양시 초동면 범평리 옛 범평초등 1만6000여㎡에 지난 1998년 개관한 ‘미리벌민속박물관(www.miribeol.org)’.

초동면사무소로 가는 길옆 대밭 울타리 너머에 다소곳한 자태로 앉은 이곳이 바로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민속문화공간이다.

관장인 성재정(64·경남박물관협의회장)씨는 젊어서부터 민속품 수집에 열정을 다 바쳐 ‘역사의 탯줄’ 민속유물 보물창고를 만들어 냈다. 교실을 개조해 만든 5개 테마별 전시실에는 조선시대 고관대작에서부터 평민들이 일상에서 사용했던 사랑방과 안방, 주방가구를 비롯해 각종 생활용품 3000여점이 조상의 숨결을 머금고 있다.

실제 미리벌민속박물관이 소장한 유물은 4만5000여점. 민속품은 3000여점이지만 고서와 고문서 등 서지유물만 2만여점이고, 집안에서 물려받은 간찰(편지글)만 해도 3000여점에 이른다. 여기에 조선시대 복식과 비단, 조각보 등도 2만점이 훌쩍 넘는다. 이들 대부분은 아직 전시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대부분 수장고에 갇혀 있다.

미리벌민속박물관 전경.
다양한 전시민속품에는 조선시대 사대부 가문과 일반 여염집에서 벌어졌을 일상사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

성 관장은 무시로 유물에 스며있는 일상사들을 흔들어 깨운다.

전국에서 방문객들이 찾아들면, 특유의 구수한 입담과 사실(史實)에 근거해 마치 당시의 일들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양 풀어내는데, 탄성이 절로 나온다.

“조선 사대부집 여인들은 가마 타는 날이 정해지면 음식 조절에 들어갔어. 그 이유는 세 가지였지. 몸무게를 줄여 가마꾼들의 수고를 덜어주고, 멀미와 용변량을 줄이기 위해서였지. 그래도 불가피할 경우에 대비해 가마 안에 조그만 요강을 넣어두긴 했어.”

“이게 뭔지 알아. 보통 2폭 병풍이라고들 하는데 틀렸어. 이건 나무를 깎아 만든 가리개야. 친정 어머니가 과년한 딸이나 시집가는 딸에게 당부의 뜻을 새겨 선물했던 거지. 시집가서 자손번창하고 가족화목하라는 염원에서 석류를 새겼고, 도리를 다한 연후에는 천년 수명을 누리라고 송학(松鶴)도 새겼어.”

“떡살의 문양도 그냥 있는 게 아니야. 옛날 어르신들은 떡살 무늬만 보고도 그 집안에 무슨 일이 있는지 다 알아맞췄지. 가느다란 실처럼 생긴 문양을 새긴 실편(일명 세편)은 아이 돌이나 백일 때 명줄 길라는 뜻에서 만든 떡이고, 꽃 문양 떡은 결혼식 때, 매화 문양은 시집살이를 잘 견뎌내라고 사돈댁에 보내는 상떡에 새겼어. 우리가 흔히 잘 아는 절편은 끊어진다는 의미로 제사나 초상 때 쓰던 떡이야.”

성 관장의 설명은 지칠 줄 모르고 이어진다.

“쌀과 보리를 보관하는 뒤주에 ‘붕어자물통’을 채운 이유가 뭔지 알아. 잠을 안 자는 것으로 알려진 물고기가 도둑을 잘 지키라는 뜻이라고 얘기들 하는데 잘못이야. 곡식이 귀하던 시절 탱글탱글한 붕어알처럼 항상 곡식이 가득 차 있으라는 기원을 담았던 거지.”

빼닫이가 달린 삼층장과 만석꾼의 돈궤로 사용됐을 윗닫이, 한지를 두루마리로 말아서 보관했던 반닫이 등의 쓰임새도 막힘없이 술술 풀어낸다.

소나무와 자연석 등으로 조성된 화단.

성 관장은 요즘 세대들의 자녀 교육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 갔다오면 학원 다녀와 컴퓨터 하는 게 일상이야. 그래서는 효심도 없고, 인성도 자라지 않아. 옛날 양반집에서는 사랑방에서 효행을 가르쳤어. 그게 외훈(外訓)의 일번이었지. 5~6세 때부터 손자를 팔베개에 눕히고 ‘얼음속 잉어’와 ‘눈속의 죽순’ 등 효와 관련된 얘기를 들려주었다고. 처음에는 이해를 못하지만 잠재의식 속에서 뜻을 알게 되지. 요즘 가정교육이 어디 있는가. 그러니까 자식이 부모를 해치는 일이 생기지.”

성 관장은 어떤 연유로 민속박물관을 세우게 됐을까?

진주시 대곡면 딱밭골 성 부잣집의 자제로 태어난 것이 계기였다. 그의 어린 시절은 자연스레 품격있는 민속품과 어우러진 문화 속에서 살아왔고 자유당 시절 가세가 기울면서 민속품에 대한 애착이 간절해지더란다.

20대 월급쟁이를 시작하면서 돈이 생기면 ‘옛날에 우리 큰집에 이런 물건들이 있었는데…’하는 생각이 들면서 눈에 보이는 민속품들을 무작정 사 모으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골동품 바람이 불어 민속품들이 여간 비싸지 않았다. 1976년부터 1986년까지 삼성출판사 창원지사장으로 근무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민속품을 수집했다고 한다. 월급을 거의 쏟아 부었다.

직장을 그만두고는 더욱 전력투구했다. 그러나 수집한 민속유물을 보관할 곳이 없었다. 창원시에 타진했지만, 뜻을 알아주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밀양시가 사정을 알고 선뜻 폐교를 내어 주었다.

운동장 한쪽에 만든 철길.

올해는 정부와 시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전시실과 지붕, 외벽을 깨끗하게 정비해 제법 박물관의 모습을 갖췄다.

12월 1일부터 열흘간은 수학능력 시험을 치른 고3 수험생들을 위한 ‘수능 후 100일 문화작전’ 탐방 프로그램을 무료로 운영한다.

성 관장은 앞으로 박물관 뒤뜰과 운동장 양 옆으로 전통한옥 20채 가량을 복원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그래서 철거되는 재실이나 한옥에서 나오는 기둥 등 목재들을 많이 확보해 두었다.

그는 앞으로 “속도에 지친 도시민과 학생들에게 한 이틀 전통한옥에 쉬게 하면서, 도예도 배우고 삶도 반추하게 하는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문의 ☏391-2882.

이상목기자 smlee@k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