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요즘처럼 탈곡(脫穀)을 하는 기계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벼를 거둔 다음 껍질이 알갱이를 싸고 있는 나락 상태로 두었다가 때때로 방아를 찧어서 겨를 벗겨냈지요. 이것은 쌀 아니라 보리나 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기에 있는 놈은 제주도에서 건너온 방아입니다. 생김새가 참 재미있지 않나요?

가운데 박힌 돌은 화산석(火山石)입니다. 제주도의 상징처럼 돼 있는 현무암이 용암이 되어 흘러넘치다가 식으면서 굳어 그리 됐겠지요. 앞에서 말한 대로 이 방아도 곡식의 껍질을 벗기거나 낟알을 가루로 낼 때 썼습니다.

아래쪽에는 마치 제기(祭器)처럼 다리를 해 달아 키 작은 사람의 허벅지께를 살짝 밑돌 만큼 올려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앉아서 절구를 들고 방아를 찧을 수 있도록 만든 셈입니다. 방아확도 조그마하니까 한 손으로 콩콩 찧어도 될 만큼 조금씩만 넣었겠습니다.

돌로 된 방아확 옆으로는 나무를 쟁반처럼 넓게 둘러놓았습니다. 당연히 빻은 곡식이 튀어서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하려고 했겠지요. 그래서 둘레에다가도 나무를 세워 붙여 한 알이라도 더 건지려 했습니다.

이 나무는 이름이 ‘조목’이라 하는데 한라산에 저절로 나서 자라는 잡목이라고 합니다. 행여나 사전에 나오나 싶어서 찾아봤더니 ‘역시나’ 없었습니다. 어쨌거나 야물어서 아주 실용적이라더군요.

이 방아의 특징은 몸통에 글자가 새겨져 있다는 데 있습니다. 가장 위에는 ‘좌우명’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앉은 자리 오른쪽에 두고 늘 새기는 말이라는 뜻이지요.

그리고 그 아래로 경인(敬人) 정의(正意) 희생(犧牲)을 썼습니다. 남을 받들고 바른 뜻을 가지며 다른 무엇이나 남(식구들)을 위해 자신을 버린다는 말입니다.

이 글들을 보면서 과연 누가 새겼을까 생각해 봅니다. 여기 앉아 일을 하던 어머니나 할머니가 새겼을 수도 있겠고 이 방아를 만들어 준 남정네가 새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상민 집안 물건일 개연성이 아무래도 높은데 그렇다면 집안 어른이 되겠지요.

남자가 새겨줬다면 그리 하라는 강요가 되고 여자가 새겼다면 알아서 그리 하겠다는 순종이 되겠지요. 하지만 어떤 경우든그 시대에는 그리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미 그 시대는 이것들이 미덕으로 자리잡아 여성들로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촘촘하게 그물처럼 짜여 있었겠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새긴 필체로 봐서 대단한 수준까지 공부를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전혀 공부를 하지 않은 것 같지도 않습니다. 가운데 쓰여 있는 정의(正意)는 틀렸고 정의(正義)라고 해야 맞다고 하시는 이도 있지만 그리 볼 수도 있고 그리 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따져보면 나름대로 문자를 아는 이의 작품이라 할 수는 있겠습니다.

이 방아는 아마 100년은 훨씬 넘은 물건입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민속품은 사람 손때가 묻은 정도라거나 물건이 닳은 정도를 보고 나이를 재어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놈은 양 옆에 손으로 많이 잡았을 부분이 헐어서 떨어져 나갔는데다 상처도 자연스레 골고루 나 있어서 나름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가운데 돌로 된 방아확은 물론이고 빙 쟁반처럼 둘러놓은 나무에도 손때가 묻어 반들반들한 빛이 나는 데 견줘보면 누구도 나이를 100살보다 낮춰 잡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