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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말·찌르개 - ‘쌀’ 에 얽힌 애환, 감히 무게를 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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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곡(秋穀), 가을 곡식이라는 말이 우습기는 하지만 이를테면 쌀을 일정 수준 사들여 쌓아두겠다는 것인데 농민들은 이에 대해 수매제가 없어지면 기준 가격도 따라서 없어지는데다 수입 물량까지 밀려들어 쌀값이 생산비를 밑돌 수밖에 없다고 반대하고 있습니다.

도하개발어젠다(DDA)나 세계무역기구(WTO) 따위 알아듣기도 힘든 데서 쌀 수입을 개방하라고 하는 통에 이리 되는 모양입니다. 미국이나 중국 같은 쌀 수출국이 우리 정부더러 쌀 시장 개방을 미뤄줄 테니 의무 수입 물량을 4%에서 8%로 늘리자 하는 모양이고 농민들은 그리 되면 쌀값이 폭락해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진다며 수입 완전 개방과 다를 바 없다고 고개를 내젓습니다.

이 추곡 수매제는 역사가 꽤 깁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미곡 수집령’, 48년 ‘양곡 매입법’, 1949년 ‘식량 임시 긴급조치법’을 거쳐, 50년 ‘양곡 관리법’을 제정하면서 본격화됐습니다.

70년대 들어 공업화를 급속하게 진행하면서는 정부 수매량이 전체 생산량의 10%를 웃돌게 됐습니다. 그러다 77년 즈음에는 20%를 넘어섰고 89년 28%까지 올랐다가 최근에는 25% 안팎에서 수매량이 결정된답니다.

73년부터는 사들이는 값보다 판매가격이 더 낮은 이중가격제도가 시행됐는데 이를 통해 도시 노동자의 생계비를 줄이는 한편 농민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효과를 냈답니다.

이렇게 쌀나락을 수매할 때는 당연히 등급을 매겼겠지요. 그 때 썼던 물건이 바로 찌르개입니다. 나락 가마니를 이것으로 푹 찌르면 홈을 타고 낱알이 쪼르르 나오고 이 놈을 보고 검사원이 등급을 때렸지요.

검사원의 기세는 대단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70·80년대만 해도 행정 기관의 서슬이 시퍼렇던 때여서 보통 사람들은 말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좋은 등급을 받으려고 이들 주머니에 돈을 찔러넣곤 했답니다.

쌀을 장터에서 사고 팔 때는 되나 말로 되었습니다. 요즘은 포장 재료와 기술이 좋아져 무게 단위로 포장해 팔지만 옛적에는 멍석에 쌓아놓고 부피로 헤아렸다는 것입니다.

이 때 쓰는 물건이 아시다시피 되(升)나 말(斗)입니다. 한 움큼 정도 되는 홉(合)이 열 개 모이면 한 되가 되고 되의 열 배를 일러 말이라 하지요.

옛날에는 싸전 이문은 되질에서 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니까 쌀장수가 되질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양이 달라졌다는 얘기인데요, 되(또는 말)에다 쌀을 수북하게 담은 다음 제대로 흔들어 다지지도 않고 조그만 방망이를 갖고 아주 야박하게 깎아내 버리면 담기는 양이 적어지고, 되를 여러 번 흔들어 빈틈을 최대한 줄인 다음 후하게 깎으면 그만큼 양이 늘어나지요.

그러니까 여러 번 흔들면서도 쌀 사이 빈틈을 줄이지 않는 기술, 후하게 깎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사실은 야박하게 해버리는 손재주가 장사꾼에게 필요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이 모두가 규격화·기계화돼 눈속임이 자리잡을 허점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와 함께 되질을 좀더 후하게 해 달라느니 그렇게 하면 남는 게 없다느니 하는 흥정도 사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