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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 개화와 함께 ‘보자기’ 자리 꿰찬 신식 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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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겨레는 아무래도 한 군데 진득하게 눌러 앉아 지내는 편이었나 봅니다. 물건을 들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데 쓰인 것들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옛날 우리 겨레라 해서 무엇을 들고 다닐 일이 없기야 했겠습니까만 유물로 남은 것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는 말입니다.

가방은 이른바 개화(開化)와 함께 다른 나라에서 들어왔습니다. 서양 문물인 셈입니다.

물건을 넣어 들고 다니기 편하도록 만든 기구인데 가죽이나 천으로 만들었습니다. 요즘은 손으로 들고 다니거나 어깨에 메고 다니는 것을 비롯해 바퀴를 달아 끌고 다니는 것 따위가 여럿 나와 있지만 옛날 여기 이 가방을 쓸 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깨에 메는 것은 이른바 점잖지 못하다 해서 쓰지 않았고, 바퀴가 달린 것은 길 바닥이 고르지 않았기 때문에 쓰기가 어려웠겠다고 짐작해 봅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반듯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가방도 이렇게 네모 반듯하게 생겨 먹었습니다. 요즘은 좀 덜하다지만 그래도 ‘품행이 방정(方正)하다’에서 보는 것처럼 모(方)가 나고 반듯(正)한 것을 여전히 좋아합니다. 그래서 여기 이 가방들도 방정하게 생겼습니다.

가방의 틀은 무엇으로 만들었을까요? 가볍고 얇은 나무 판자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안으로는 얇은 천으로 감싸고 바깥으로는 보시다시피 돼지나 소의 가죽을 써서 튼튼하게 바르고 박음질을 해 댔습니다.

모가 진 데에는 다른 가죽을 덧대어 잘 떨어지지 않게 하는 한편으로 모양을 내는 데도 이를 응용했습니다.

이런 가방은 당시 이른바 개화도 하고 돈도 많은 이들이 주로 쓰지 않았겠습니까? 물론 일제 시대 독립군이 이른바 군자금을 모아 담아 나를 때도 썼을 것입니다. 그리고 연극 <이수일과 심순애>에 나오는 주인공들도 이런 가방을 들고 다녔습니다.

그렇다면 그 전에 우리 겨레는 무엇으로 물건을 담아 들고 다녔을까요? 그것은 바로 보자기, 보(褓)였습니다. 한글학자로 이름나 있는 일제 시대 주시경 선생은 책이나 도시락을 이것으로 싸 다녔기 때문에 별명이 ‘주 보따리’였다고 합니다. 보따리란 바로 보자기로 싼 물건 덩이를 일컫는 말이지요.

물건을 싸거나 덮는 데 쓰려고 헝겊으로 네모지게 만든 이 같은 보들이 옛날에는 쓰임새도 많고 가짓수도 많았습니다. 이불보·상보를 비롯해 패물보·편지보·노리갯보·수보·날염보·요강보 따위가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보(자기)의 쓰임새가 지금 가방과는 조금 다른데 사람이 먼 길을 나들이할 때는 괴나리봇짐을 만들어 등에 지고 다녔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배낭쯤 되겠는데 옛날에는 대부분 희고 큰 베로 만든 보자기에 길가거나 객지로 떠나는 데 쓰이는 물건을 넣고 말아서 꾸렸으니 봇짐이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머리 속에는 과거 보러 가는 가난한 과객의 괴나리봇짐이 자리잡고 있는데 여기에는 문방사우는 물론이고 갈아 입을 옷과 더불어 용돈도 조금 들어 있었습니다.

어깨로 짊어지기 알맞게 양쪽에 멜빵도 달려 있었고, 또 주로 걸어다녔을 테니 괴나리봇짐 남는 끈에는 짚신도 몇 켤레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 개화 문물인 가방(트렁크)의 등장으로 차츰차츰 사라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