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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가구 ‘반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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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밭 문서·귀중품 넣은 보물함


사랑방 가구의 대표는 단연 반다지입니다. 40~50대 어른들의 기억에는 많이 남아 있겠는데, 보통 사랑방 벽에는 옷을 거는 데 쓰는 대나무 걸이가 있고 윗목에는 제사 때 지방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 필요한 책상이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이 반다지도 한쪽 구석에 반드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반다지’는 문이 반쯤 여닫힌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또 문을 앞으로 여닫기 때문에 앞다지라고도 합니다. 따라서 ‘반다지’는 외국말도 아니고 사투리도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를 사실적(寫實的)으로 드러내 보이는 순우리말 이름일 뿐입니다. 이래저래 꾸며 붙이기에는 우리말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반다지 위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지금은 장롱 속에 집어넣거나 침대 위에 깔아두기도 하는 이부자리와 베개 같은 것들이 깔끔하게 개어져 있었습니다. 아니면 도자기나 수석 같은 것을 올려 방안을 소박하게 꾸밀 수도 있었습니다.

반다지 안에는 주로 문서와 책들이 들어갔습니다. 두고두고 읽는 책이라든지 논과 밭, 집의 소유 관계를 밝혀주는 문서들은 모두 사람 손을 타지 않고 소중하게 보관해야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닥나무로 만든 한지(韓紙)도 두루마리로 말아 반다지 안에 집어넣었습니다. 당시로서는 그만큼 귀하고 비싼 물건이었습니다. 게다가 붓으로 먹을 찍어 글씨를 써야 했는데, 종이를 함부로 다뤄 구겨지기라도 하면 먹이 골고루 묻지 않는 어려움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아이들이 좋아하는 떡이나 엿·곶감 같은 것들도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새벽녘에 안방에서 자던 어린아이가 잠결에 깨어나 칭얼거리면 어버이는 ‘사랑에 가거라’ 합니다. 사랑방에는 물론 할아버지가 거처하십니다.

베개를 들고 내려온 아이에게 할아버지는 반다지에서 끄집어낸 먹을거리를 안깁니다. 그러고 나서 팔베개를 해 주고는, 아이야 알아듣든 말든 집안 내력과 조상의 자랑거리를 들려줍니다. 지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지만, 어릴 때부터 자손의 잠재의식에다 집안의 자부심과 자존심을 심어주는 훌륭한 교육이기도 했습니다.

이 반다지는 주로 느티나무(괴목·槐木)나 은행나무·소나무로 만들었습니다. 이 나무들은 다른 나무들과 달리 부피가 꽤 크게 자랍니다. 그러니까 쪽판이 아니라 두꺼운 통판을 얻기 위해서였지요.

또 쇠든 나무든 못은 일절 쓰지 않고 아귀가 서로 단단하게 맞물리도록 맞췄습니다. 이를 일러 4궤 물림이라 하는데 이렇게 하니까 녹슬거나(쇠못) 부러지지(나무못) 않아 오래 갈 수밖에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 장석은 만들어 붙였습니다만 집집마다 있는데다 이처럼 소박하고 짜임새가 어긋나지 않고 튼튼하니 가구 가운데 가장 제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같은 반다지를 잘 만드는 데가 경남에는 여러 군데 있었습니다. 진주·남해·통영·김해·양산·밀양 반다지가 유명했고 경북 경주·안동과 울산도 높게 쳐줬습니다.

요즘은 물건에 따라 이른바 명품 브랜드가 있습니다. 가구도 그렇고 옷이나 다른 상품들도 마찬가집니다. 하지만 옛날에는 지역 이름이 브랜드를 대신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 지역에서 만든 물건이라 하면 무엇이 달라도 다르다고 봤습니다. 따라서 ‘명품’ 지역의 물건은 값이 조금이라도 더 높게 치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