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과 은경

거울 하면 무엇이 생각나시나요? 방안에서 거울 앞에 앉아 얼굴을 비추는 아름다운 여인이 저는 생각납니다. 물론 한복 차림으로 금방 일어나 머리를 땋은 다음 장면쯤이 되겠지요.

빛의 되쏘는 성질로 모습을 비춰보는 거울은 역사가 아주 오랩니다. 옛적 거울이 없을 때 사람들은 고인 물에 자기 모습을 비쳐 보곤 했습니다. 나르시스가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다가 빠져 죽어 수선화가 됐다는 그리스 신화나 여기서 비롯돼 자아도취를 뜻하게 된 나르시즘이라는 낱말이 이를 증명하고 있죠.

중국에서는 2300년쯤 전부터 경(鏡)이라는 글자를 썼다고 합니다. 쇠로 만든 거울을 뜻하는 말이지요. 이보다 앞에는 감(鑑)을 썼답니다. 이 또한 지금은 경과 마찬가지로 거울로 번역되지만 원래는 달라서 ‘비춰볼 수 있도록 대야 같은 데 떠 담은 물’이라는 뜻이었다네요.

이처럼 거울 역사가 긴 까닭은 아마 자기 모습을 비춰보고 싶은 마음은 거의 본능에 가까웠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화장이라든지 이런 데 신경을 쓰지 않고 거울을 그윽하게 바라보노라면 어느새 자기 속마음이 들여보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특히 눈동자를 바라보면 무언가 쑥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자기 얼굴을 스스로 빤히 쳐다보기가 왜 이렇게 겸연쩍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요즘은 유리거울을 쓰지만 옛날에는 은이나 청동 아니면 쇠의 표면을 곱게 갈아 광을 내어 썼습니다. 유리거울은 그렇지 않고 편평한 유리판 뒷면에 수은을 바르고 연단(鉛丹)을 발라 습기를 막습니다. 이 유리 거울이 지금 생각하면 아주 오랜 옛날 물건인 것 같지만 지금 같은 유리거울이 대중화된 것은 채 100년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박물관에서 이 같은 옛날 거울을 보면 갑자기 둘레가 조용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옛 사람들의 생활과 아주 밀접한 물건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이는 다른 민속품들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러니까 이보다는 옛날 자기를 비춰보는 유일한 물건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알다시피 유리거울 이전 거울은 그리 잘 비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총천연색으로 있는 그대로 모습이 비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금만 그대로 두거나 손때가 묻어도 잘 보이지 않으니까 자주 닦아줬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옛날 사람들이 요즘 사람보다 수신(修身)에서 조금이라도 나은 면이 있다면 이처럼 거울을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터무니없는 짐작을 해봅니다.요즘은 너무 흔하고 너무 좋아서 아낄 필요도 소중하게 여길 까닭도 없으니까 바삐 스쳐지나가면서 아무데서나 슬쩍 비쳐보고 말지만 옛날에는 조용히 자리잡고 따져보지 않으면 제대로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좀더 신중하게 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본답니다.

여기 이 거울은 동경(銅鏡)과 은경(銀鏡)입니다. 동그랗고 손잡이가 달린 놈은 구리로 만든 거울이고 네모가 난데다 손잡이가 없는 것은 은으로 만들었습니다.

은경은 마치 구리로 만든 것처럼 누런빛이 나고 정작 동경은 푸른빛을 띱니다. 이것은 제대로 닦지 않고 내버려뒀기 때문입니다. 요즘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 쓰이는 물건이 아니라 박물관 소장품이다 보니까 주인의 일상적 보살핌을 받지 못한 탓이지요.

사람 얼굴이나 물건의 모양을 비추던 쪽은 편평합니다. 크기는 겨우 손바닥만하거나 조금 클 뿐입니다. 뒷면은 고르지 못한데 매달아 두는 데 쓰려고 무슨 홈을 파놓거나 장식을 했습니다. 은경은 뒷면을 아주 단순하게 마무리지었지만 동경은 아주 복잡하게 무엇을 많이 새겨넣었습니다. 새나 구름 나무를 조금은 기하학적으로 처리한 듯합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거울 앞에 서면 저도 모르는 새에 사람이 차분하게 가라앉습니다. 옛날 거울을 보면서, 옛날 사람들의 삶 속에서 거울은 무엇이었을까, 그이들은 거울을 앞에 두고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짐작해 보는 일도 나름대로는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