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학처럼 장수하고 석류처럼 다산하거라”


지난번 ‘애기장’은 시집가기 전 애기씨가 물건 간수하는 데 쓴 가구라 할 수 있겠지요. 이미 말씀드렸듯이 여기다 차곡차곡 챙겨놓았던 옷가지랑 자수들을 나중에 혼례를 올리고 시댁에 갈 때 가져가지 않았겠습니까?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옛날에는 한 번 시집가 버리면 친정 나들이를 평생 가야 한두 차례 할 수 있을까 말까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나들이가 어려웠던 기본 까닭은 교통 수단이 뒷받침이 되지 않은 데 있습니다. 지금은 비행기나 자동차로 쉽게 오가지만 옛날에는 웬만하면 걸어다녔고 기껏해야 말이나 가마였으니까 말입니다.

또 소식을 주고받기도 어려웠습니다. 종이도 귀하고 글자를 깨친 사람도 많지 않은 시절인데다 거리가 떨어져 있다 보니 편지 한 장 보내고 받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지금이야 손전화로 숫자 몇 개만 꾹꾹 누르면 바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여기에 더해 가난한 살림살이도 왕래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됐습니다. 몇 해만에 하는 친정 나들이에 빈손으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시댁에서 무엇이라도 좀 갖고 갈 상황이 아니면 엄두를 내지 못했답니다.

친정이 가난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댁으로 돌아올 때 친정에서 마땅한 선물을 장만하지 못할 정도면 친정 나들이는 아예 꿈도 못 꾸고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혼례를 계기로 왕래가 거의 가로막히다시피 하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다시 만나기 어려우니 딸과 어머니의 헤어지는 마음이 얼마나 애달팠겠으며, 어머니는 또 고된 시집살이를 딸이 잘 견딜는지 얼마나 걱정스러웠겠습니까? 더구나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여자들은 점점 더 하찮은 존재로 돼 갔다는 시대 상황까지 포개어 본다면 모녀의 헤어지는 정상은 더욱 딱할 수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어머니는 이 때 멀리 시집가는 딸에게 늘 옆에 두라면서 이 가리개를 줬다고 합니다. 가리개는 사실 없으면 안되는 생활필수품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가리개’라는 말 그대로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거나 지저분한 물건을 가릴 때 쓰기는 했습니다만…….

하지만 가리개는 그 쓰임새보다는 여기 돋을새김이 돼 있는 그림에 참 뜻이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서로 마주보는 두 짝에는 송학(松鶴)과 석류(石榴)가 들어 있습니다. 소나무와 두루미는 거북이나 해·달과 함께 오래 사는 장수의 상징이라는 점은 다시 설명해 드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석류는 무엇을 뜻할까요? 석류는 안에 알갱이가 촘촘히 박혀 있습니다. 이처럼 아들딸을 많이 낳는, 이른바 다산성(多産性)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체를 뭉뚱그려 보면 가리개에는 이 같이 ‘제발 시부모 귀염 받고 남편 잘 모시면서 아들딸 많이 낳은 다음 송수학령(松壽鶴齡)을 누려 다오’ 하는 친정 어머니의 애틋함이 살점처럼 묻어 있습니다.

가리개는 딸이 딸에게 대를 이어 물려주는 물건이었습니다. 딸은 이 물건을 시집으로 들고 가서 날마다 봤을 것입니다. 방 한 구석에 두고는 친정 어머니가 생각날 때마다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심코 이 물건에 눈길이 머물렀을 때에는, 저도 모르게 친정 어머니가 생각나 눈물을 지었을지도 모릅니다.

가리개의 테두리는 느티나무로 둘렀답니다. 쉬 구할 수 있는 나무여서 그랬을 것입니다. 반면 송학과 석류를 도드라지게 새긴 안쪽은 피나무라고 합니다. 피나무는 무르고 부드러워 무엇을 새기거나 파는 데 알맞은데다 뒤틀리지도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소중한 목재로 대접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