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자수놓은 천·장식용품·속옷…애기씨 시집갈 때까지 차곡차곡


애기장은 이름처럼 앙증맞고 예쁘장합니다. 안방 차지를 하고 앉은 이층농이나 삼층장보다 작습니다.

우리 민속박물관을 찾아오는 아이들이나 선생님에게 ‘왜 이름이 애기장일까요?’, ‘무엇 하는 데 쓴 물건이었는지요?’ 물어보는데 제대로 맞히는 이가 거의 없습니다. 아이들은 자기네 같이 어린아이들이 입을 옷가지들을 넣어두지 않았겠냐고 답을 합니다. 그렇지만 섭섭하게도 아닙니다. 그러면 선생님들은 어떻냐 하면 마찬가지 답을 하거나 잘 모르겠다고 하시지요.

텔레비전 같은 데서 사극을 보면 조그맣고 어린 딸아이인데도 요즘으로 치면 웬만한 어른보다 더 요조숙녀처럼 보일 때가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면 세월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봐야 하겠지요.

옛적 양반 집 어른들은 딸이 예닐곱 살만 돼도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른바 ‘아랫것들’은 주인집 따님이 어릴 때부터 ‘애기씨’나 ‘아가씨’라 했겠지만 이쯤 나이가 되면 누구라도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못하도록 높이 쳐줬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옛적 아이들은 10살만 돼도 요즘 20살짜리 처녀들보다 철이 더 들어 있게 됐습니다. 이렇게 되는 데는 당시 어버이들이 조석(朝夕)으로 불러 앉혀 놓고 하는 교육이 크게 역할을 했습니다. 요즘 말로 세뇌(洗腦)했다고나 해야 할까요?

이럴 땐 이렇게 해야 하느니, 저럴 때는 저렇게 해야 한다 등등 생활 예절에서부터 행동거지에 이르기까지 시쳇말로 귀에 못이 박이도록 하고 또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13살이나 15살이 되면 부모가 봐뒀던 집안에 시집을 보내는 것이지요.

애기장은 이렇게 자라나는 애기씨 방에 있던 물건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거처하는 사랑방도 아니고 어머니가 자리잡은 안방도 아닌 건넌방쯤에 있던 물건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 여기에는 무엇이 들어갔을까요? 이쯤에서 다시 애기씨 얘기를 조금만 더 해 봅시다. 애기씨는 자라면서 어머니에게서 바느질을 배웁니다. 해지거나 구멍난 데 꿰매는 데서부터 집안 어른이나 자기가 입을 옷은 물론이고 시집에 가서 쓸 옷가지까지 틈틈이 짓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장식용품 또는 생활용품으로 자수도 놓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씩 의복이 쌓이고 자수를 놓은 천들도 덩달아 많아집니다. 애기장에는 이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애기씨가 한 살 두 살 더 먹을수록 더 많은 자수와 옷가지가 쌓일 것입니다. 그러다가 시집갈 때 한 보따리 들고 가는 혼수가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여기 애기장에는 이른바 ‘남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것들도 감춰두었습니다. 여인네들은 나이가 들어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되면 달거리를 하는 법입니다. 달거리를 할 때 요즘은 생리대를 쓰지만 그 때는 베를 기저귀처럼 잘라 만든 ‘개짐’밖에 없었다고 하지요. 그러니까 이 같은 개짐이라든지 속옷을 한 데 감춰두던 데가 바로 애기장입니다.

여기 이것은 통영 나비 애기장입니다. 백동(白銅)으로 나비 모양을 만들어 되풀이 붙임으로써 장식성을 아주 높였습니다. 느티나무로 만들었는데 특별한 까닭은 없습니다. 두 개를 포개어 2층으로 썼으며 겉보기에도 아주 깔끔하고 단정합니다. 어떻습니까, 이렇게 보면 해맑은 어린 애기씨 같기도 하고 또 다르게 보면 옅게 단장하고 시집 갈 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요조숙녀 애기씨 같아 보이기도 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