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平床)이라 하면 사람들은 대개 시골 마을 감나무 밑에 아무 꾸밈없이 펼쳐져 있는 놈을 떠올리기 십상입니다. 그런 평상은 누구라도 지나가다가 신발 벗고 올라가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게 합니다. 참 익숙하고 친근한 풍경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처럼 격식을 갖춘 평상도 있답니다. 사실 이 평상은 시골 마을에 아무렇게나 만들어져 아무렇게나 있는 것과는 달리 나름대로 잘 사는 집 방안에 있던 것들입니다. 하나는 안방에, 다른 하나는 사랑방에 말입니다.

먼저 사랑방에 있던 평상을 한 번 볼까요. 사랑방 평상은 앞쪽이 트여 있습니다. 쓰는 사람이 남자(바깥주인)이다 보니 이처럼 안팎이 나뉘어 있지 않아 활동성 또한 그만큼 많았고요. 알맞은 두께로 깎은 나무를 일정한 틈을 두고 잇대어 바람이 잘 통하게 돼 있습니다.

그야말로 고관대작이 쓰던 평상처럼 쇠붙이로 장식을 달거나 기교를 주어 다리를 휘어지게 만들어 화려한 물건도 있었지만 대부분 사랑방 평상은 이처럼 검박(儉朴)하고 단순했습니다. 기껏해야 구름무늬를 띄엄띄엄 새기는 것으로 모든 장식을 대신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주인 양반은 무엇을 했을까요. 일단 양반이니까 여기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했습니다. 언젠가 한 번 소개한 것처럼 경상(經床)을 펴놓고 말입니다. 그러다가 나른해지면 여기 드러누워 낮잠을 즐겼습니다. 물론 제대로 하려면 머리에는 목침(木枕)을 베고 가슴에는 죽부인(竹夫人)을 끼고 잠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다가 바깥에서 사람이 오면 자기보다 아랫것일 때는 대청마루나 디딤돌 아래 세워 놓고 얘기를 주고받았을 것이고 벗이나 집안 사람 같으면 평상 위로 들게 해 바둑이라도 한 판 두었을지도 모릅니다.


바깥주인 용 - 책읽고 바둑두거나 낮잠자기도

안주인 용 - 아(亞)자 무늬는 여자용이란 뜻


안주인이 쓰던 안방 평상은 여러 모로 사랑방 평상과 달랐습니다. 사랑방 평상은 다리가 달려 있지만 안방 평상은 바로 바닥에 붙도록 만들어졌으며 또 사방이 둘러쳐져 있어 활동성이 떨어졌습니다. 어쨌거나 안방 평상은 사랑방 평상보다 좀더 오밀조밀하게 꾸며져 있는데 아래쪽에 빙 둘러서 새겨놓은 구름무늬가 돋보입니다. 안방마님은 그러니까 구름을 타고 다니는 선녀가 되는 셈입니다.

그렇지만 보다시피 둘러친 나무 울타리는 아자(亞字) 무늬를 하고 있습니다. 으뜸이 아니고 버금이라는 뜻의 이 아자는 바로 남자가 아닌 여자가 쓰는 물건임을 나타내었습니다. 요즘식으로 심하게 말하면 아무리 선녀라 해도 이등인간이고 이류인생이라는 말이 되겠지요.

물론 같은 점도 있습니다. 사랑방 평상이나 안방 평상 모두 두 짝으로 돼 있으며 일절 못을 쓰지 않고 짜 맞추거나 못을 쓰더라도 쇠못 대신 나무못을 썼다는 점은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여기 앉아서 안주인은 길쌈이나 바느질 부엌일 아니면 다른 집안일을 아랫것들에게 시키고 감독을 했습니다. 이밖에 다른 여러 일도 했겠지만 어쨌든 이 같은 방안의 평상은 자기네 권위를 돋보이게 하는 자리였음은 분명합니다.

한편으로 이 안방 평상은 아이 키우는 데에도 꽤 쓸모가 있었습니다. 옛날 양반집에 아들이 태어나면 제 아버지조차도 머리 위로 다니지 못하게 했습니다. 크게 될 아이 장래를 밟게 해서는 안된다는 뜻이 아니었겠습니까. 말하자면 아이 머리맡을 ‘원천봉쇄’하는 데 이 평상이 참 쓸모가 있었습니다. 벽에다 평상을 갖다 붙이고 아이 머리까지 벽에다 바짝 당겨 놓으면 누구도 지나다니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