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투머리에 탕건쓰고 갓까지 ‘의관정제’

지난번 절간에 들러 목어랑 범종 따위 사물을 둘러봤는데 옛날 선비 같으면 걸어갈 수도 있겠지만 말이나 사인교(四人轎)를 탔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바깥나들이를 할 때 그이들은 어떤 차림으로 무엇을 챙겼을까요. 아니면 우리가 알기로 별다른 꾸밈이 없는 이들이니까 그냥 갓만 달랑 메어 쓰고 집을 나섰을까요.

요즘은 아무렇게나 차려입어도 바깥나들이를 할 수 있지만 옛날 선비들은 반드시 의관(衣冠)을 정제(整齊)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먼저 상투머리에다 탕건을 쓰고 갓을 얹었습니다. 양반일수록 챙이 넓은 갓을 썼는데 양반보다 신분이 낮은 중인들은 챙이 좁은 갓밖에 쓸 수가 없었습니다.

이밖에 어린아이 장가 들 때 쓰는 갓이 따로 있었는데 챙이 중인들 갓처럼 좁은 대신 가운데 솟은 머리 부분이 좀더 넓고 높이는 낮은 편이었습니다. 머리는 말총(말꼬리)으로 만들었으며 챙은 잘게 쪼갠 대나무를 촘촘하게 엮어 만든 다음 둘을 이어 갓을 만들었습니다.

이 같은 머리에 쓰는 갓과 탕건은 평소 갓집에다 넣어 보관했습니다. 이 갓집은 반다지에 넣어두거나 문갑 위에 걸어뒀겠는데, 돼지피를 입힌 한지를 여러 번 겹쳐 발라 만들었고 돼지피는 벌레와 습기를 막는 데 보탬이 된답니다.

그런 다음 두루마기(도포)를 걸치고 가장 먼저 도장을 챙겼습니다. 왜냐하면 사대부가의 선비들은 신의를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약속이나 거래를 할 때 도장을 눌러 둘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벗들과 어울려 시회(詩會)를 할 때도 자기가 쓴 글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이 도장은 다른 물건들과 함께 주머니에 넣어졌는데 이를테면 얼개빗과 빗쏘시개, 부시와 부싯돌, 갓끈과 갓통, 호박 단추·석경(거울)·표주박 따위가 그것입니다.

빗과 거울은 언뜻 생각하면 선비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기기 십상이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옛날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상투를 틀 때는 이른바 의관정제가 작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물며 집안에 머물지 않고 바깥에서 남들 이목에 그대로 띄니까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아낙네들이 참빗을 주로 쓴 반면 선비들은 얼개빗을 많이 갖고 다녔으며 거울은 요즘 봐도 아주 귀여울 만큼 덮개까지 달려 있으며 크기도 조그마했습니다. 빗쏘시개는 어디에 쓰냐고요? 이것은 빗 사이에 끼인 때를 닦아내는 데 썼습니다.

갓끈은 구멍이 숭숭 뚫린 갓끈통에 넣어서 들고 다녔는데요 호박 단추도 여분으로 더 챙겼습니다. 선비가 갓끈이 떨어지거나 단추가 떨어지면 행색이 더없이 초라해 보입니다. 그래서 행여나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곧바로 원래 모습을 갖추려고 이처럼 넉넉하게 갖고 다녔던 것입니다.

표주박도 눈 여겨 봐 둘만합니다. 이것들은 크기가 모두 어른 손바닥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며 높이도 손가락 두 마디 정도밖에 안됩니다. 나무로 만들기도 했고 조롱박을 잘라서 쓰기도 했는데 아주 가볍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겨우 끼니를 잇는 가난한 선비의 살림살이를 일러 대그릇 밥과 표주박 물이라는 뜻으로 단사표음(簞食瓢飮)이라고 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크기는 무슨 대접만 해도 그냥 모양만 조롱박 비슷하게 생기면 표주박이라 하고 마니까 실감이 나지 않지만 사실 이처럼 조그만 그릇에 담긴 물이라면 그야말로 보잘것없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