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에서 ‘가마’는 틀림없이 ‘검다(黑)’에서 왔습니다. 가마솥은 끓는 무쇠를 거푸집에 부어서 만듭니다. 물러서 쉽게 녹기 때문에 즐겨 쓰는데 이 무쇠가 빛이 검습니다.

솥을 우리나라에서는 부뚜막에 걸어 썼습니다. 침대가 아니라 온돌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궁이에다 대고 장작이나 솔가리 또는 짚을 때어 먹을거리를 만들면서 한꺼번에 방을 데웠습니다. 취사(또는 조리)와 난방을 단번에 해 치웠다고나 할까요.

우리 겨레가 썼던 솥을 한자로는 부(釜)라고 합니다. 부뚜막에 걸었으니까 아래가 그다지 우묵하지 않고 편평한 편이었고 발(足)이 달려 있지 않았습니다. 대신 무게를 지탱하면서 걸려 있어야 했으니까 가운데 손잡이에 거북다리 같은 걸침대가 네 개 나와 있습니다.

가마솥(釜) 대신에 발이 달려서 옮겨 다닐 수 있는 것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바깥에서 제사 음식 만들 때 정도밖에 쓰지 않았다는데 한자로 정(鼎)이라 합니다. 가마솥보다 깊으면서 둥그렇고, 다리라고나 해야 할만큼 기다란 발이 세 개 달려 있지요. 물론 네모꼴도 없지는 않았고 네 발 달린 물건도 있기는 했습니다만.

그래서 중국 역사소설 <삼국지 연의>에서 위(조조)·오(손권)·촉(유비)이 나란히 나라를 세워 이룬 삼국 시대를 일러 정립(鼎立)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세 발을 한 데에도 다 까닭이 있습니다. 네 발 솥은 쉽게 쓰러지지만 세 발 솥은 오히려 웬만큼 비탈진 데에 놓아도 자빠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마솥은 공동체의 뿌리요 원천이었습니다. 지금도 자주 쓰는 ‘한솥밥’이라든지 ‘식구(食口)’라는 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솥밥’이라 하면 무슨 운명공동체 비슷한 느낌을 받습니다. ‘같은 집에서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인 식구는 ‘가족(家族)’보다 정겹습니다. 같은 피붙이도 아니면서 함께 살다니 그게 예사냐! 뭐 이런 정도 되겠지요.

물론 이는 실제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먼저 밥이 나옵니다. 그리고 간식거리인 누룽지도 여기서 나오고 숭늉도 여기서 나옵니다. 콩으로 메주를 쑬 때도 이 가마솥을 쓰고 잔치나 초상이 있을 때는 돼지 같은 짐승도 이것으로 삶았습니다. 이 ‘한솥밥’을 ‘식구’들이 나눠 먹은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른 새벽 할아버지는 사랑 부뚜막에 걸친 가마솥에다 콩깍지나 볏짚을 넣고 물을 부어 소가 먹을 여물을 쑵니다. 솥이 작거나 소가 많으면 저녁때도 같은 여물을 쑤어야 했습니다. 그 냄새를 맡고는 사립 옆 마구간에서 느릿느릿 소가 울거나 목에 단 방울이 달랑대거나 했지요.

땔감이 모자라던 시절이다 보니 불기운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습니다. 군불을 땔 때는 솥에 물을 부어 데웁니다. 이 물로 식구들 돌아가며 목욕하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또 때던 불이 다 꺼지지 않고 재 속에 있는데다가 두께도 만만찮아 뚜껑만 단단히 덮어두면 안에 있는 온기가 오래 갔습니다.

옛날 어머니들이 왼쪽 다리를 부뚜막에 걸친 채 오른손에 든 주걱으로 가마솥 밥을 그릇에 담았다고 합니다. 특별한 까닭은 없겠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끓는 밥과 타는 불의 열기를 몸에 받아들여 모자라기 쉬운 양기를 자연스레 보충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솥이 작아지고 두께가 얇아지면서, 삶도 함께 크기가 작아지고 오므라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안타깝지는 않지만 쓸쓸합니다. 가사 노동의 크기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