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런 물건도 이제 민속품 대접을 받는다 생각하니 어째 좀 야릇한 기분이 들기도 하네요.

90년대 초반만 해도 이곳저곳에 주산학원이 있어서 상업학교 다니는 여학생들이 드나들었는데 10년 새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옛날에는 이런 주판을 써서 가감승제(加減乘除) 계산을 하거나 아니면 암산(暗算)이라고 속셈을 하는 방법 이렇게 둘이 있었습니다. 물론 숫자를 써서 하는 필산(筆算)도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도 주판 셈법을 도드라지게 가르쳤고 1급이니 2급이니 해서 국가 자격 시험도 치르곤 했지요.

그러다가 전자계산기가 나오고 나서도 한참 동안 주판은 유력한 계산 방법으로 남았는데 컴퓨터가 등장하면서부터는 아무도 이를 가까이 하지 않는답니다.

수판의 원시 형태는 모래나 분말로 덮인 간단한 판자로 표면을 여러 행(行)으로 구분하여 이것을 자리로 삼고 이 자리에 선이나 기호를 써서 계산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세계적으로는 3000～ 4000년 전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이런 셈법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2500년 전의 이집트나 그리스·로마 등에서는 선수판(線數板)이라 해서 판자 위에 줄을 여럿 긋고 줄 위에 작은 돌을 놓아 계산했겠지요.

중국에서 수판에 관한 가장 오래 된 문헌은 한나라 때 서악이라는 사람이 쓴 <수술기유(數術記遺)>인데 여기에 ‘주산(珠算)’이라는 말이 적혀 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쓰인 주판은 윗알이 두 개, 아래알이 다섯 개 있었는데 윗알은 5를 나타내고 아래알은 1을 나타내는 것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아래알이 꽉 차면 이것을 털어버리고 윗알 하나를 올렸으며 윗알 두 개가 또 꽉 차면 한 줄 왼쪽에 있는 아래알 하나를 다시 채우는 식으로 셈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조선에서는 이 중국식 주판을 그대로 써지만 일본에서는 이를 개량해서 윗알 하나를 없앴다고 합니다.

윗알 하나와 아래알 5개로 10까지를 나타내고 그 다음에는 곧바로 한 줄 왼쪽에 있는 아래알을 써서 잇달아 셈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1400년대에 들어서 주로 쓰였다고 돼 있는데 그 전에는 사람들이 나뭇가지 같은 것으로 산가지를 만들어 썼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계산하기가 조금 번거로운 중국 주판이 물러가고 일본식 주판이 그 자리를 대신했는데 이것이 다시 개량돼 아래알이 5개에서 4개로 줄었습니다.

여기 그림에 보이는 큰 놈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주산을 가르칠 때 썼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눕혀 놓고 쓰지 않고 세워서 써야 했으니까 알과 뀀대 사이가 뻑뻑해서 쉽게 흘러내리지 않도록 돼 있습니다.

이 앞에서 선생님은 운주법과 운지법을 가르쳤고 학생들은 아래에 있는 것과 같은 작은 주판을 자기 책상에 올려놓고 선생님 말씀에 따라 알을 굴렸을 것입니다.

옛날 우리 오누이들이 취직을 하기 위해 열심히 배우고 연습했던 이 주판이 이제는 우리 현실 생활에서 완전 퇴출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