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식으로 생각하면, 그것도 도시형으로 머리를 굴리면 참 옛날 사람들 귀찮고 어렵게 살았구나 생각이 듭니다. 밥을 한 번 해 먹어도, 키로 까불고 체로 치고 조리로 일어야 했습니다.

키는 무게의 다름을 근거로 삼아 가벼운 껍데기는 날려버리고 무게가 나름대로 나가는 알곡 낟알을 골라내는 연장입니다. 그러니까 나락이든 콩이든 뭐든 타작을 하면 겨라든지 하는 잡티가 섞이게 마련인데 이것을 먹을 수는 없으니까 때에 따라 골라내야 합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무게가 다르니까 공중에 올렸을 때 다시 내려오는 빠르기가 같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시차(時差)를 두고 떨어지니까 키에다 곡식을 한꺼번에 담고 까불면 껍질은 날아가고 무거운 알맹이만 남게 됩니다.

이렇게 가장 처음 걸러내는 일을 키가 하고 나면, 알갱이의 굵기에 따라 구분해주는 체질과 무겁기는 하지만 먹을 수 없는 모래알 같은 것들을 걸러주는 조리질을 마지막으로 거치게 됩니다.

날마다 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키질이 지금처럼 낯설지는 않았고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는 일상사였던 시절이 바로 20～30년 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 생각의 원형질에서 키는 단순히 낟알 고르는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형틀로 기억돼 있습니다. 어린 시절 “아이구 안 되겠다, 이 자식. 가서 키 좀 가져오너라” 하는 소리가 납니다. 그러면 “와아아” 하고 어린 아이 막 터져나오는 울음소리가 곧이어 뒤따릅니다.

아이가 오줌을 싼 모양입니다. 이렇게 이불에다 지도를 그리면 아이에게 쪽박을 들리고 키를 뒤집어 씌워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소금을 얻어오게 했습니다. 물론 오줌을 쌀 때마다 그렇게 하지는 않았고, 이를테면 오로지 어머니가 이 형의 집행권을 소유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그 때 기분에 따라 달라졌음이 거의 틀림없습니다.

동네 어른들이 그냥 곱게 소금을 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뉘 집 자식이냐?’에서부터 시작해 지난해에 저질렀던 일까지 끄집어내어 ‘니가 그러면 그렇지, 밖에서 말썽을 피워대니까 집에서도 뭘 잘 하겠냐’ 따위 갖가지 타박을 듣고 심지어 얻어맞기도 하고 찬물을 바가지로 뒤집어쓰기도 했답니다.

옛날 같은 공동체라서 가능했지 지금 같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인격 모독의 현장이었습니다. 아마 이런 기억도 점점 나이를 먹어 퇴장 위기에 놓였겠지만 학교서 수업 시간에 도시락을 까먹다가 들키면 엄한 선생님은 도시락을 입에 물린 채 1학년 교실에서 3학년 교실까지 한 바퀴 돌리곤 했던 일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도시락이나 키나 마찬가지로 이처럼 명예를 해치고 인격을 모독함으로써 두 번 다시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게 하려는 데 쓰인 명예형(名譽刑) 형틀이었습니다. 게다가 키를 뒤집어쓰고 있다가 같은 또래 여자아이 눈에라도 띄면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여기 이 키는 대나무로 틀을 짜고 세부 얼개까지 대쪽으로 해서 만들었습니다. 크기는 열 살짜리 아이 가슴 높이까지 정도였습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여기에 곡식 낟알을 담고 두 손으로 들어 아래위로 까불기 딱 좋은 크기지요. 재료는 지역에 따라 달라서 대나무로 만들기도 했고 싸릿대로 만든 놈이 좀더 많은 데도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