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지어 말린 뒤 노릇노릇 볶아 곱게 빻아서 체로 친 가루를 꿀과 소금과 함께 반죽해 다식판에 박으면 쌀다식(茶食). 밤을 삶아 속껍질까지 벗긴 다음 곱게 찧어서 체로 친 다음 계핏가루·유자청·꿀로 반죽해 다식판에 박으면 밤다식.

검은깨를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빼고 살짝 볶아 기름이 나도록 오래 찧어서 꿀로 반죽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내면 검은깨다식. 송홧가루를 꿀로 반죽해 다식판에 박아 노란색이 곱게 되도록 하면 송화(松花)다식. 녹말가루에 오미자물과 꿀을 섞고 반죽하여 다식판에 박아내면 빛깔이 분홍인 녹말다식.

콩가루를 꿀로 반죽해 박으면 콩다식. 당귀라고, 뿌리를 한약재로 쓰는 승검초를 곱게 가루 내어 송홧가루와 함께 꿀로 반죽해 박으면 승검초다식. 생강 가루에다 녹말가루 계핏가루를 섞고 꿀로 반죽한 다음 찍어내면 녹말다식.

그리고 용안육(龍眼肉)다식도 있는데 이 놈은 인도가 원산인 용안이라는 나무의 열매의 속살을 일컫는 용안육을 곱게 찧고 체로 거른 다음 꿀로 반죽해 찍어낸 다식입니다. 이쯤 되면 이 다식이 얼마나 화려하고 고급한 음식인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옛날로 치면 양반 가문 가운데서도 대단한 가문만 이런 다식을 제대로 만들어 먹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 다식은 글자에 차(茶)가 들어 있는 데서 짐작되듯 통일 신라나 고려 시대 차를 즐겨 마신 풍습과 관련이 있답니다. 이를테면 차를 마시는 형식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다식만 남아 있다고 하면 되겠습니다.

이 다식을 찍어내는 판이 바로 다식판입니다. 옛적에는 먹을거리를 주로 집에서 만들어 먹었으므로 이 다식판은 격식 있는 양반들이 집집마다 갖춰 놓고 있었습니다. 이 또한 떡살처럼 가문에 따라 달랐는데 남에게 빌려주지 않았으며 대대로 이어가며 물려 썼습니다. 가문의 내력이 이 다식판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입니다.

다식판은 단단한 나무의 길쭉한 조각에 새겨 만드는데 세 가지가 있습니다. 위·아래에 다식 모양을 파낸 것과 한 조각에 구멍을 파낸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위·아래 두 짝으로 된 다식판은 다식 모양을 도드라지게 한 양각판과 구멍을 내어놓은 판이 맞물리게 돼 있습니다.

양각판 튀어나온 부분에 壽(수)·福(복)·康(강)·寧(녕) 같은 길상(吉祥) 문자를 새겨 넣기도 하고 완자무늬나 꽃무늬 또는 물고기 따위를 아로새기기도 했습니다. 물고기는 아마 아주 많은 알을 배는 데에서 끌어와 다산(多産)과 풍요의 상징으로 그랬음이 틀림없습니다.

아래위가 부딪치는 다식판으로 다식을 박아낼 때에는 위판을 올려 괸 다음 패인 구멍에 반죽을 꼭꼭 채워넣은 뒤 위판을 눌러 박으면 되는데 그러면 무늬가 곱게 묻어 나옵니다. 다식판을 만드는 재료는 배나무 박달나무 대추나무 참죽나무 같은 단단한 것으로 골라 썼습니다.

필요할 때에는 음식 만드는 일을 하는 주부가 몸소 새기기도 했다는데, 삶에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예나 이제나 먹을거리를 단순한 먹을거리로 만들지 않고, 입만이 아니라 눈까지도 즐겁게 하려고 이처럼 부득부득 애를 썼나 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