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잘때 주머니 속 물건 담는 작은 상자 역할도

벌써 봄날도 많이 지났지만 그래도 점심을 먹고 나면 무척 졸립니다. 하지만 어쩌면 옛날로 볼 때는 낮잠이 많은 철이 오히려 여름일지도 모릅니다. 양력 오뉴월 보리를 걷어낸 논에다 물을 채우고 모내기를 하면서부터 가을걷이를 끝낼 때까지 농촌은 바쁘게 돌아갑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옛날에도 농투성이들은 무더운 여름철 한낮에는 들에 나가 일하지 않았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낮이 한참이나 길어져 있기 때문에 새벽 일찍 일어나 덜 덥고 조금이라도 시원할 때 일하고 정오를 전후한 한낮에는 낮잠을 자면서 쉬었습니다.

그러다가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막 넘어가려 할 무렵, 말하자면 내리쏘는 햇살이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할 때 일터인 들판으로 나가는 것이지요. 이렇게 잠잘 때 머리를 받치는 데 쓴 베개가 바로 목침(木枕)입니다.

목침이라… 어릴 적 기억을 되살려보면 그냥 뭉툭한 나무도막일 뿐이었지 이런저런 꾸밈이 덧붙은 적은 없었지 싶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민속박물관에 목침이라고 남은 물건들은 지체 높은 집안에서 쓰던 놈들이다, 이렇게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테두리만 있을 뿐 가운데가 뻥 뚫려 단순 소박하기 그지없는 목침은 굳이 나누자면 남자가 썼습니다.

반면 가운데에 구름무늬가 투각(透刻)돼 있는 목침은 여인네가 썼겠지요. 물론 아무 여인이나 쓰지는 않았겠고 안방 마님 정도가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이 같은 구름무늬는 안방 평상이나 가리개 등 부인용 가구에 주로 투각이 돼 있었습니다.

네모가 난 데다가 가운데가 뚫리지 않은 놈도 있었습니다. 이 놈은 가운데가 비어 있고 뚜껑이 달려서 빼다지로 여닫을 수 있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담아두는 상자와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상자 같은 목침을 만들 필요가 어디에 있었을까요? 비밀은 바로 조끼에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양반뿐만 아니라 상민들도 웬만하면 조끼를 받쳐입었습니다. 조끼를 입는 까닭은, 바지에 주머니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머니칼이나 쌈지 같은 것들을 지니는 데에는 주머니가 많은 조끼가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이 조끼를 옛날 사람들은 낮잠을 잘 때도 벗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원래 그대로 낮잠을 즐기면 주머니에서 이것저것 물건들이 쏟아졌겠지요. 그러면 누가 와서 무엇을 가져가도 모르게 되고…….

이 상자 같은 목침은 이럴 때 딱 필요했습니다. 조끼 주머니에 들어 있는 물건들을 주섬주섬 집어 담고는 뚜껑이 있는 쪽을 위로 해서 베고 자면 물건이 흩어지거나 사라질 위험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