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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틀 - ‘쭉쭉’ 뽑는 재미 ‘쫄깃쫄깃’ 씹히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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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틀을 보면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에 나오는 소작농이 생각납니다. <토지>에서 이들은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한 채 헐벗고 굶주립니다. 한겨울 삭풍이 몰아치는데도 방구들을 데울 땔감이 없어서 얇은 홑옷을 입고 벌벌 떱니다. 게다가 좁쌀은커녕 끼니로 쓸 거리가 없어서 굶어죽는 장면도 나옵니다.

이제부터 100년밖에 안된 시절의 풍경이 이랬으니 그 전에는 말해 무엇하랴 싶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임진왜란 때 기록을 보면 이른바 조선을 구하러 왔다는 명나라 군사들이 술에 취해 길가에 토악질을 해놓으면 그것을 먼저 주워 먹으려고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힘이 모자라 옆으로 밀려난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며 피눈물을 흘렸다고도 돼 있습니다.

물론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런 참상들이 생산력의 발전·퇴보에만 달려 있지 않고 오히려 생산물을 두고 분배하는 소유관계, 힘관계가 더 크게 작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시절이 하(何)수상할 때일수록 고달픈 사람들의 고달픔은 더했다는 것입니다.

국수틀 하나를 두고 웬 궁상이냐고요? 맞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궁상입니다. 그런데 때때로 민속품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은 그 민속품이 그 시절에 가졌던 표상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쌀이든 메밀이든 가루를 반죽해서 통에 넣고 공이로 눌러서 국수를 뽑아내는 틀이 바로 국수틀입니다. 말하자면 이 국수틀을 집안에 놓고 국수를 삶아먹은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피나락도 없어서 초근목피로도 제대로 연명하지 못할 때 말입니다.

이 별스럽지 않은 재미, 지금 시대를 사는 모두가 다 누렸으면…

물론 한갓지게 한 번씩 국수를 뽑아 먹는 일 자체는 전혀 잘못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저런 삶 속에서 이런 별스럽지 않은 재미도 없으면 너무 팍팍하겠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 별스럽지도 않은 재미를 모두가 다 누리도록 하면 얼마나 더 좋을까 하는 소박한 바람을, 지금 이 시대에 맞게 한 번 가져보자는 데에 있는 셈입니다.

고려 시대에는 절간에서 이미 제면업(製麵業)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때부터 이미 국수틀이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인데, 아쉽게도 지금 남아 있는 유물도 없고 그 때 국수틀의 구조나 모양을 알려주는 자료도 없답니다.

1830년대에 출판됐다는 서유구의 <임원경제십육지>에 면자라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큰 통나무를 중간이 부르도록 잘 다듬어 그 중간에 구멍을 뚫는다. 구멍은 지름이 4~5치 되는데 이 둥근 구멍의 안을 무쇠로 싸고 바닥에 다시 작은 구멍을 무수히 뚫는다”고 돼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있는 이 국수틀은 무쇠가 박혀 있지 않고 나무에 그대로 구멍이 나 있습니다. 이로 미뤄 볼 때, 옛날에는 쇠가 훨씬 귀하고 비쌌으니까, 그보다는 못한 집에서 쓰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개인 취향에 따라 국수를 좋아하는 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도 있겠지만 잘 반죽한 메밀가루 따위를 통에 넣은 다음 공이를 통 위에 맞춰 놓고 눌러 뽑은 국수 한 번 맛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 밑에는 바로 솥이 걸려 있고 물은 와그르르 끓고 있을 텐데요. 제대로 익은 국수 가락을 건져 찬물에 식힌 다음 고슬고슬 고명을 얹거나 아니면 그대로 양념으로 간만 맞춰 먹는 것입니다. 쫄깃쫄깃한 면발이 어쩌면 산낙지 다리의 빨판보다 더 진득하게 목에 감길 것 같지 않습니까? 이웃에 친한 벗이 아니라도 불러 같이 한 상 차리면 무척 좋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