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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독 - ‘술 맛’에 버금가는 ‘술 담그는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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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참 쓸모가 여러 가지였습니다. 요즘이야 자장면 시켜 먹을 때 바닥에 까는 정도로 그치지만 종이가 귀하던 옛날에는 더했습니다. 뒷간에서 일 보고 뒷감당하는 데 쓰기도 했고 장롱에 옷을 챙겨 넣을 때 깔거나 채소 따위를 갈무리할 때도 이 신문지가 필요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냄새를 없애는 데도 이 신문지가 요긴했습니다. 물론 이보다 더 옛날에는 짚을 태워서 냄새를 지웠지만, 항아리 같은 그릇에 무슨 냄새가 배어 있을 때 물로 잘 씻은 다음 신문지를 태운 연기를 쐬어 술이나 김치 냄새를 빼냈습니다. 이 술독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지요.

술독은 술을 빚거나 빚은 술을 담아 두는 독입니다. 여기 있는 이 술독은 아마도 술을 빚을 때 썼다기보다는 빚은 술을 걸러서 담아 놓을 때 썼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일단 크기가 작고 모가지가 좁아서 용수를 넣기가 어렵게 돼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술을 빚는 데에도 전혀 쓰지 않았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웬만한 집엔 술독 하나씩 있었는데…

술독은 높은 열에서 구운 놈이라야 하는데 크고작은 정도는 술의 재료가 되는 지에밥의 양에 따라 결정됩니다. 이 놈을 물로 잘 씻어 내고, 푸른 솔가지를 안에 넣은 다음, 솥에 거꾸로 엎어두고 쪄서 식힌 다음에 씁니다. 독 밑에 두꺼운 나무판을 깔고, 뚜껑도 널빤지로 덮는데 술을 빚어 넣은 뒤에는 이불 같은 것으로 말아서 덮어 쌉니다. 겨울에는 짚으로 독을 감싸고 엮기도 하는데 짚으로 만든 두트레 방석을 뚜껑으로 삼았으며 잡티가 들어가지 않도록 삼베로 덮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술독은 아름답게 만들어지는 술병이나 주전자나 술잔 따위와는 달리 기능 측면이 중시돼 겉모양은 그냥 생긴 대로였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술의 역사는 일제 시대에 끊어집니다. 그 전에는 웬만한 집에서는 다 술을 담갔다는 데 일제가 수탈을 위해 술에다 세금을 물리고 집집마다 담그던 술을 밀주(密酒)라고 단속을 하면서 전승이 끊어진 것입니다. 일제 36년이 술의 숨통을 끊어놓기에는 충분한 기간이었던 모양입니다.

이처럼 맥이 도중에 끊어져 버린 전통 술을 빚으려면 먼저 누룩을 잘 디디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통밀을 물로 반죽해 덩이를 만든 다음 여섯 달 정도 발효시키면 속속들이 곰팡이가 핀답니다. 이 누룩과 쌀 같은 곡물 원료를 버무린 다음 이 술독에 넣으면 일단 일이 끝납니다. 이 때 쌀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술맛도 천차만별로 달라진답니다. 생쌀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어 설익은 상태로 쓰기도 하고 시루에 쪄낸 밥을 쓰기도 하며 백설기 같이 찌거나 죽을 쑤는 등 갖가지로 해서 술을 담갔습니다.

일제 36년 때문에 ‘술의 역사’끊어져

이렇게 짧게는 사흘, 길게는 백일 정도 지나면 찌꺼기는 가라앉고 표면은 맑고 노란 물로 바뀝니다. 이것이 바로 약주랍니다. 남은 찌꺼기에 물을 타서 걸러내면 막걸리가 되고 소주고리에 증류해 내면 소주를 마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요즘 시중에 나도는 희석식 소주와는 근본에서 다릅니다. 유명한 약주로는 소곡주와 백하주와 호산춘 등이 있으며 막걸리로는 숟가락으로 떠먹었던 이화주라든지 산성막걸리가 이름 높았고 소주로는 잘 알려진 대로 문배주라든지 이강주 안동소주 따위가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술 담그는 데 썼던 쌀이 먹고살기에도 모자랐지만 이제는 그 정도는 아닙니다. 어떻습니까? 지금 집에 조금 여유가 있다면, 이처럼 잘 생긴 술독을 하나 얻어서 옛날 방식대로 술을 한 번 담가서 좋은 이웃이나 벗들과 함께 한 잔 마시는 일도 그리 나쁠 것 같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