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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개인박물관을 운영하는 사람들] 추억을 모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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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박물관을 운영하는 사람들] 추억을 모았더니…

개인박물관 운영하는 아름다운 수집광들
"열 금송아지도 남에게 보여야 보배"



빨래방망이 절구 검정고무신 가마솥 요강 등이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해금강테마박물관의 전시실.

모처럼 맞은 휴일이나 때 되면 돌아오는 자녀들 방학철. 많은 부모들이 한 번쯤은 가벼운 고민에 빠집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집에서 푹 쉬었으면 더없이 좋겠죠. 그러나 '코에 바람이라도 집어 넣으면 어디가 덧나냐'는 듯이 바라보는 가족들의 눈길은 그런 여유로움을 주지 않습니다.

몸을 일으킨대도 걱정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럴싸한 유원지라도 갈라치면 비용이 만만찮고, 인파에 이리저리 치일 생각을 하면 떠나기 전부터 머리가 아파옵니다. 이럴 때 손쉽게 나설 수 있는 곳은 아무래도 가까운 박물관이나 전시관일 겁니다. 큰돈이 들지않는 데다 교육적인 측면도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으니까요. 게다가 요즘에는 규모가 커 사람이 많이 몰리는 국공립 박물관 대신 아담한 사설박물관들도 많이 생겨나 재미를 더해줍니다. 여기에서는 오래된 가전제품에서부터 장롱 지게 절구통 양은도시락 등 옛날을 추억하게 만드는 생활용품들이 즐비해 일반 박물관에서 볼 수 없는 아기자기한 구경거리를 던져줍니다. 모처럼 만나는 뜻밖의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근데 개인이 운영하는 이런 사립박물관들을 들러보면 조그마한 의문이 생깁니다. 구경하는 처지에서야 눈 한번 즐거우면 그만이지만 도대체 저 사람들은 무슨 수로 저런 것들을 다 모았을까 하고요. 수집하고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만 해도 엄청날 텐데 그 것을 어떻게 마련했는지도 궁금해집니다. 또 기껏 모은 것들을 고가에 팔지 않고 선뜻 사회에 환원하는 속내도 알고 싶습니다. 덧붙여 세속적인 계산마저 떠오릅니다. '에구 그렇게 생돈 들일 요량이라면 그냥 펀드라도 굴리지'라고 말입니다. 급기야는 사람들이 어찌 저리 바보같고 어수룩할까라는 데까지 생각은 비약하고 맙니다.

하지만 사립박물관을 만든 사람들은 세상의 이런 시선에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말하더군요. "누가 하더라도 해야 하는 일이 아니냐"고요.

'귀중한 것은 다같이 즐겨야 한다'라는 생각에서 사는 사람들. 이들의 이야기 속에 한 번 빠져보십시다.


# 황금송아지 열마리 집에 숨겨 놓으면 뭐하나

- 라디오 텔레비전 영사기 등 5만 여점

- 어릴적 취미가 수집광으로 발전

- 여태 모은게 너무 아까워 박물관 전시


개인박물관에는 귀하고 소중한 것들은 다함께 즐겨야 한다는 수집가들의 숭고한 뜻이 담겨 있다. 거제전기전자박물관의 윤종호 관장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의 거제전기전자박물관 윤종호(53) 관장. 그는 부산시 환경국에서 사무관으로 일하는 현직 공무원. 지난 2일 자신의 고향 마을 인근에 박물관을 열었다. 진공관을 이용한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비롯해 축음기 영사기 환등기 카메라 각종 회로판 등 전기·전자와 관련된 제품 70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그나마 공간이 좁아 전체 소장품 5만여 점에 턱없이 부족한 숫자만 관람객을 맞을 뿐이다. 윤 관장은 진공관까지 포함해 포괄적으로 전기·전자 제품만을 모아둔 곳은 전국에서 유일할 것이라는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있었는지 전기제품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지요. 멀쩡한 라디오를 뜯었다가 혼난 적도 많았습니다. 대신 동네에서 고장난 전기제품은 모조리 고쳐주기도 했습니다."

윤 관장은 처음에는 재미삼아 여러가지 전기·전자제품을 사들였다. 그러나 하나 둘 모이다 보니 버리기가 아까워졌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수집에 들어갔다. 쉬는 날이면 부산에 있는 폐가전제품과 판매점들을 샅샅이 훑었다. 그러기를 20여 년. 어느새 수집품은 5만점을 훌쩍 넘어 버렸다.

수집품의 처분이 곤란해지자 윤 관장은 세가지 계획을 생각했다. 첫째는 2층 건물을 마련해 위층에 전시관을 만든 뒤 아래층에서는 식당이나 카페 등을 운영하는 것, 둘째는 수년 후 가격이 오를 때 판매해 돈을 버는 것, 셋째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윤 관장은 고심 끝에 마지막 안을 선택했다.

각오는 그랬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월급쟁이 처지에 전시공간을 마련한다는게 어려웠던 까닭. 다행히 거제시의 해금강 테마박물관 측이 윤 관장의 뜻을 높이 사 박물관 내 부지 무상대여를 제안하고 나섰다. 갓 문을 연 박물관은 아직 완전한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컨테이너 박스를 이용해 수집품을 전시해 놓은 수준. 세련된 박물관을 기대했던 사람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기·전자제품의 발달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결코 적지 않다.

"집안에 황금송아지 열 마리 있으면 뭐합니까. 한 마리라도 많은 사람이 볼 수 있어야죠."


# 박물관은 명분있는 업

- 고문서 등 옛 물건 4만 여점

- 매달 공무원 월급 10배 투자 수집

- IMF 등 생활고에도 신념 지켜


미리벌민속박물관 성재정 관장.

경남 밀양시 초동면의 미리벌민속박물관 성재정(64) 관장. 경남 박물관·미술관협의회 회장이다. 성 관장은 지난 1998년 5월 초동면의 한 폐교를 인수해 사립박물관을 세웠다.

교실을 개조한 5개 테마별 전시실에는 우리 선조들이 사용했던 3000여 점의 생활용품이 투박하지만 정겨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수장고에는 아직 채 정리하지 못한 고문서와 간찰, 조선시대 비단복식 등 4만여 점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1970년대 자영업을 하던 성 관장은 어릴 때 집안에서 흔히 봐왔던 민속품에 대한 애착에서 수집을 시작했다. 당시 공무원 봉급의 10배 이상을 벌었던 그는 월급의 대부분을 민속품 구입에 투자했다. 당시 수집가로 유명했던 모 인사가 "돈이 되려면 도자기를 모아야 한다"고 권유했지만 초지일관 민속품에만 매달렸다.

"누가 해도 해야 할 일이었지만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그게 왜 하필 나였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생활고에 쪼들릴 때는 더욱 더 그랬고요. 자식들 학비를 마련하려고 소장하고 있던 그림들을 팔기도 했습니다. 박물관 개관 후 곧 IMF사태가 터졌는데 그 때 어려웠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옵니다. "

경남 진주 태생으로 부산의 모 고등학교에서 축구선수 생활을 하기도 한 성 관장은 애초에 자신이 오랫동안 거주하던 창원에 박물관을 열기를 원했으나 부지를 구하지 못해 밀양에 터를 잡았다.

미리벌민속박물관의 특징은 별다른 사정이 없다면 성 관장이 직접 해설에 나선다는 점. 단 한 사람이 오더라도 예외가 없다. 1998년 개관 이후부터 줄곧 지켜온 철칙이다. 게다가 입담은 얼마나 구수하고 청산유수인지 관람객들의 혼을 쏙 빼놓을 지경이다. 민속품 분야에서 그 누구보다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성 관장은 대학에서의 강의요청도 자주 받는다. 그러나 가급적 사양한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한사람이라도 더 박물관을 찾아오도록 하는게 낫다는 생각에서다. 사람이 고급병이 들어 버리면 자기제어를 못한다는 것도 한 이유다.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삽니다. 남들이 뭐라고 손가락질을 하더라도 박물관은 명분이 있는 업이거든요."


# 돈 보고 하면 이 일 못하죠

- 우리 생활물건 40만 점

- "이런 걸 왜 모았는지…" 후회도

- 한때 정신병자 오해 받기도


를 짜던 틀

거제시 남단에 있는 해금강 테마박물관은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생활사를 보여준다. 유천업(54) 관장이 사재를 털어 지난 2005년 문을 열었다. 보릿고개가 존재하던 어려웠던 시절의 생활자료 5만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전체 물량은 40만 점에 이른다. 이제는 모습조차 찾기 힘든 빨간색 공중전화와 펌프로 물을 퍼올리던 수돗가, 기계충을 걱정해야 했던 옛 이발관 등이 그 시대를 산 사람들에게 아련한 향수를 자아낸다.

전시기획일을 하던 유 관장은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기억하고픈 생각에 수집을 시작했다. 그러다 모은 자료의 분량이 많아지자 방향전환을 검토했다. 그러나 박물관 설립을 계획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경기도에 있던 유럽장식미술박물관이 설립자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하고부터. 그 박물관의 전시일에 관여했던 유 관장은 귀중한 수집품들이 없어지는 것이 안타까워 자신의 말마따나 '집 팔고 지하셋방으로 이주한 뒤' 물건을 인수했다.

"15년전 처음 수집을 시작했는데 그동안 왜 이 일을 할까라는 생각에 혼자서 머리 많이 쥐어박았습니다. 오죽했으면 제 회사 직원들이 수집벽을 고쳐야 한다며 정신병원에 넣으려고 했겠습니까. 박물관 개관까지는 돈도 상당히 많이 들어갔습니다. 근데 돈 보고 하면 이 일 못합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 자료가 상자 안에 들어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잖습니까."

부산 영주동 출신으로 경남 박물관·미술관협의회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유 관장이 그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무래도 가족을 설득해야 했던 일. 밑빠진 독에 물 붓듯 하는 유 관장의 행동을 자식들이 특히 많이 싫어했다. 그 때마다 유 관장은 세월이 흐르면 이런 자료들도 고려청자나 고가구들처럼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달랬다.

유 관장은 향후 거제도포로수용소에 전쟁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는 테마박물관을 열 계획이다. 전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은 일반국민이라는 점을 알리고 싶다는 취지에서다.

"제가 꿈꾸는 박물관은 직접 만져보고 체험해 보는 장소입니다. 그러면서 부모가 자식들에게 직접 설명을 해보자는 것이죠. 자신이 실감못하면 설명도 못하는 것 아닙니까."


# 힘들게 모은 것 남들